계획 없던 장보기, 굴무침이 된 저녁
장을 보러 나설 때부터 메뉴를 정해두는 편은 아닙니다. 냉장고에 뭐가 남아 있는지 대충 떠올리며 걷다 보면, 그날따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재료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장바구니를 끌고 해산물 코너를 지나는 순간, 유난히 윤기 도는 겨울굴이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사람들 발걸음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니, 계절이 제법 깊어졌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굴무침을 만들 계획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장바구니에 굴을 담는 순간, 저녁 메뉴는 자연스럽게 정해졌죠. 겨울굴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계절을 충분히 전해주는 재료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흐름을 기준으로 보면, 굴은 이 시기에 가장 맛이 좋다고들 하잖아요. 괜히 한 번 더 살펴보고, 상태를 확인하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장바구니를 하나씩 정리하면서도 마음이 조금 바빠졌습니다. 굴무침은 오래 두기보다는 바로 무쳐 먹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흐르는 물에 굴을 살살 씻고, 체에 올려 물기를 빼는 동안 자연스럽게 채소를 꺼내 손질했습니다. 이 과정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한 순서라기보다는, 몸이 기억하고 있는 움직임에 가까웠습니다.
양념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정확한 계량보다는 그날의 감각에 맡겼습니다. 너무 세지 않게, 굴의 맛을 가리지 않게. 여러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처럼, 굴무침은 양념보다 재료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조심스럽게 손이 가더라고요.
무침 그릇에 굴과 채소를 담고 가볍게 섞는 순간, 저녁 준비는 거의 끝이 납니다. 오래 치대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손을 더하는 정도로요. 굴무침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되는 음식이라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쁜 날에도 부담 없고, 특별한 날에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분명하니까요.


막 무친 굴무침을 식탁에 올려두고 밥을 뜨니, 하루가 천천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숟갈 먹어보니 겨울굴 특유의 시원함이 입안에 퍼졌어요.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집밥이라는 게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죠.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괜히 한 번 더 그릇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조금 남아 있던 굴무침을 보며, 오늘 저녁은 잘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가이드라인 범위를 보면, 제철 재료를 바로 먹는 식사가 몸에도 부담이 적다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다음번 장보기에서도 아마 비슷할 겁니다. 무엇을 살지 미리 정하지 않아도, 계절이 먼저 알려주니까요. 굴무침은 그렇게 또 한 번 저녁 식탁에 오를 것 같습니다. 이런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중에는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으로 남겠죠.